MYARTS

  • 작가명 : 백종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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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노트
2012년 현재 우리를 뒤돌아보자. 놀이는 잃어버린지 오래고, 그 사실조차 잊은 지 오래다. 대부분 어린 시절 골목길에 대한 추억이 있을 것이다.
장롱 속 보자기를 목에 두르고 종이로 만든 칼을 들고 낮부터 밤까지 놀이를 했던 나를 찾을 수 있다.
하나를 희생해야만 얻을 수 있는 노동으로 변질된 놀이가 아니라, 시간 가는줄 모르고 나를 즐거움의 세계로 이끌었던 놀이였던 것이다.

나는 이번 작업을 통해 삶의 다양한 모습도 보고 싶고, 그것과 소통하는 즐거움도 느끼고 싶다. 그래서 어린 시절의 놀이처럼 편안한 즐거움을 관객과 공유하고 싶다.
시대와 세대가 초월되는 편안함으로 말이다.

이번 작업에서는 잠재된 추억을 꺼내는 추억하기를 통해 편안한 즐거움을 찾으려 한다. 유년시절의 로봇을 매개로 하는 추억이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향한 인간의 끊임없는 발걸음은 사소한 개인적 일상부터 사회적인 모습까지 다양함으로 나타나는 즐거운 일이다. 어린 시절 영원한 친구였던 로봇과 함께라면 즐거움은 2배가 될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할 사실은 로봇의 역할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그것은 기계적인 침묵을 드러내는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라 인간처럼 호흡하고 생각도 하면서 표현까지 하는 능동적인 존재라는 것이다.

이런 로봇을 통해 무위자연(無爲自然)하는 이 시대 군자(君子)의 예(禮)와 인간을 사랑하는 예술가(藝術家)의 광기(狂氣)와 매번 다른 길만 가는 풍운아(風雲兒)의 모습 등. 지구에서 가장 재미있게 사는 인간(人間)의 모습을 볼 수 있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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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평론
만화이미지의 변용과 세상읽기

경험과 미술가들의 창작행위는 밀접한 관계에 놓여 있다. 하나의 기억 때문에 작가로서 존재해야 할 이유를 찾기도 한다. 예술작품은 미술가의 경험 그 자체라고 말해지는것도 이 때문이다. 백종기 작가의 경험은 로봇에서 발견할 수 있다. 작가의 성장과정에서 만난 '아톰'은 그의 상상력에 적잖은 영향을 끼치게 된다.
만화라는 대중매체는 누구에게나 쉽게 다가서게 하는 면이 있다. 특히 아톰이라는 놀라운 능력의 주인공은 대중들의 관심을 끄는데 충분했다. 귀엽고 앙증맞은 외모도 거기에 한 몫 했다. 이 아톰과 함께 백종기 작가가 미술계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불과 몇 년 전이다. 만화이미지를 차용하여 작업에 활용하는 사례는 적지 않지만 그만의 방식과 실험정신이 눈길을 끈다. 작가는 대중화된 기존 만화이미지를 독특한 입체로 변용시켰다. 그것도 유머 있으며 정감 느끼게 하는 변신이다.


아톰의 재탄생

백종기 작가는 자신이 아톰 제작자로 거듭나고자 했다. 이러한 태도도 작가의 기억과 경험에 의존한다. 어린이가 만화영화 주인공과 자신을 동일시하듯이 작가 역시 아톰에게서 자신을 발견하고자 했다. 이미지는 늘 새롭게 탄생한다.
변덕심한 대중들의 입맛은 늘 변하기 때문이다. 이미지가 부족해서 매체가 허덕이는 법도 없다.
이러한 여건 속에서도 백종기 작가는 왕년의 로봇 이미지를 복고하고자 했다. 단순히 예전으로 되돌아가려는 퇴행적 행로가 아니라 현대적 미감으로 도출시키고자 한다. 로봇의 문맥과 환경은 그의 손에서 새롭게 가공.연출된다. 이러한 작업에서 작가는 이 시대에 걸맞는 로봇 상을 재창조하고자 했다.
아톰을 제작하기 위한 과정을 살펴보면 곳곳에 그의 정성이 숨어 있다. 일일이 손으로 재단하고 조립하고 컬러링하는 과정을 거친다. 여기서 백종기 작가는 당시 세대가 그러하듯 아날로그적 공정과정을 선호한다. 장인이 그러하듯 모서리를 하나하나 맞추어 들어가는 작업이다. 그래서인지 작가의 작업을 유심히 살펴보면 칼날 같은 정교함보다는 부드러움이 있다. 극단의 매카니즘 보다 제작과정이 보이는 손맛이 느껴진다.

로봇과 흉내놀이

백종기는 아톰의 기술적인 제작자일 뿐 아니라 연출가이기도 하다. 그의 로봇은 늘 같은 복장과 색상으로 대중 앞에 등장하는 예전 모습이 아니라 시대적인 흐름에 따라 변화를 구사한다. 루이뷔통을 비롯한 명품브랜드를 입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시대적 트렌드를 읽는다. 형형색색의 장갑을 끼고 있는 아톰모습도 연출하여 감상자에게 용도와 장소의 이질감을 만들어낸다. 부조화를 경험하게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어긋난 조합방식이 주는 시각적 즐거움이 있다. 작가에게 있어서 아톰은 놀이행위의 대상이자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려는 방식이기도 하다. 아톰과 함께 등장하는 로봇 태권브이도 같은 문맥이다. 온갖 명품 로고가 찍혀있는 외관을 보자면 시대변화의 현장에 우리가 서있음을 느끼게 한다.
미노타우로스를 연상케 하는 반 로봇, 반 사람모양을 가진 일련의 군상은 과거 교복이나 교련복을 입은 세대라면 연상할만한 이야기가 떠오른다. 무언가 불량스럽게 보이는 것이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믿었던 적이 있다. 다른 학생들의 시선을 받는 것이 즐거운 시절도 있었다. 작가는 기억의 한켠에 머물러 있던 에피소드를 불러내어 재구성한다. 또 하나의 방식은 미미크리Mimicry다. 이 흉내놀이는 마치 자신이 실제대상이 된 것과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일종의 환상이자, 가장행위다. 작가는 이 놀이를 통해 현실의 대안을 찾는다. 스릴을 맛보게 한다. 작가가 아톰이나 로봇태권브이, 혹은 깡통로봇의 제작자로 자처한 것도 크게보면 이 범주에 든다. 로봇을 뒤집어쓴 이는 자신이 로봇이 되는 경험을 얻게 된다. 이를 눈여겨본 작가는 로봇제작자를 넘어 원작자이자 감독으로 거듭난다. 블롯도 새로 구성한다. 작가는 흉내놀이를 통해 대상에 뼈와 살을 붙여 나갔다. 이제 그의 로봇은 사회성 짙은 아이콘으로서 변신하고 있는 셈이다. 최근작에서 그의 로봇연작은 속도감이 더해진다. 다채롭고 강렬한 색채구사와 형태실험이 이를 증명해주고 있다.


로봇의 눈으로

백종기 작가가 독특한 작품세계를 구축한 일도 따지고 보면 지난날의 작은 경험 때문이다. 드러나지 않아도 될법하며 쉬 잊혀질 수 있는 대상이다. 이를 작가는 기억행위로 불러냄으로써 삶을 풍부하게 하고, 특별하게 보이게 만든다. 특히 파편처럼 흩어져 있는 일상의 한 이미지를 선택한 점은 눈여겨 볼 점이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작가는 '생기를 불어넣는'(Animate)행위를 통해 그 이미지의 격을 한층 높여나가고자 했다.
작가는 만화 고유 기능에서부터 문맥을 떼어내어 예술적 디테일로 전환시켜내었다. 이러한 일련의 작업은 작가만의 것이기 이전에 누구에게나 해당하는 개별적 경험을 떠오르게끔 만든다. 메시지를 공유하게 만든다. 이는 동 시대의 사람들에 대한 공감의 손짓이다. 소통의 방편이기도 하다. 작가는 로봇을 통해 현대인들의 삶을 슬며시 빗대어 보인다. <양복입은 태권브이>를 통해, 아니면<노랑장갑을 낀 아톰>을 통해서든 말이다. 어떤 축에 속하든 이는 백종기 작가가 세상을 만드는 방식이다. 세계를 새롭게 바라보려는 의지가 그 로봇에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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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 : 로봇, 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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